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삶은 시작 시점부터 이 명제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부유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부족함을 모른 채 성장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간극은 좁히기가 버겁다. 오히려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점점 더 커지다보니 금수저, 흙수저 등 신조어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나마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으로부터 위안을 느끼곤 했다. 다른 이들보다 두 배, 세 배 혹은 그 이상 노력하다 보면 행운이 내게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이따금 품기도 했다.하지만 나의 생각은 틀렸다. 10대의 시간과 20대의 시간, 30대, 40대, 50대의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 갔다. 삶에 익숙해질수록 고장난 브레이크가 탑재된 자동차에 오른 듯 폭주를 하게 됐다. 제어가 불가능하단 느낌이 들 정도로 불안한 나날들의 연속인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빨리 달리게 될지 상상이 힘들다. 그런데 실제로 남들과 다른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앓고 있는 소아조로증이라는 희귀병은 인간에게서 시간을 시간을 앗아간다. 이제 겨우 십 년 가량을 살았음에도 온몸으로는 육칠십 년의 세월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무엇이 이와 같은 병의 원인인지 우린 아직 알지 못한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가며 치료법을 개발하기에는 일단 환자의 수가 적다. 종종 임상치료가 행해지기도 하지만 결과가 긍정적일지 여부는 장담하기가 어렵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 현재로서는 환자와 가족이 오롯이 고통을 짊어져야만 한다.열두 살 원기는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다. 아기치고는 단단하고도 붉은 원기의 피부에 불안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와 같은 증상이 이름도 낯선 소아조로증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로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병명이 분명해진 후에도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직업이 목회자이였지만 더 단단한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시련을 주심에 감사하는 기도 만큼은 차마 할 수 없엇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보스턴엘 가기도 했다. 고된 검사 과정을 거쳤고 약을 처방 받아 왔지만 원기와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엇이 아이를 위한 길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저자 부부는 원기가 현재 느낄 행복을 빼앗지 않기로 결심했다. 의학이 몸의 건강을 회복시켜 줄진 모르나 그 과정에서 다친 마음까지 책임져 주진 않는다는 걸 느꼈던 게 아닐까 한다.어른도 괴로워할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도 원기는 아이다움을 잃지 않았다. 이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또래와 다른 자신의 처지에 집착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선보이진 않았다. 문득 오래 전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너무도 잘 생긴 아들, 하지만 자폐로 아들과 아무런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아이 엄마는 아들의 번듯한 외모로부터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들처럼 대화가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너무도 소박한 바람. 원기가 아이답게 발랄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어쩌면 저자 부부는 서글픔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슬픈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마저도 어쩌면 사치였을 것도 같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매 순간이 그들에겐 소중했다. 아이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시간들, 아이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나날들.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자신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아들이기에, 온 맘 가득 지금을 담으려 애쓰느라 바빴을 것이다.부모의 성숙한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지금으로서는 원기에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게 마땅하다 싶으면서도 원기의 동생에 대해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든 에너지가 그에게로 쏠린다.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성년 자녀로서나 소외감을 호소하는 게 당연하다. 원기와 수혜, 두 아이 모두에게 좋은 부모가 되길 그들은 분명 바랄 것이다. 이럴 경우엔 어찌 하는 게 옳은지, 난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나름 훌륭한 의료 제도를 갖추었으나 여전히 개인이 많은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보다 많은 예산을 들인다면 현재보다 더 나은 제도를 갖출 수 있긴 할 거다. 하지만 돈이 얼마 투자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마음까지 얼만큼 헤아리는지가 결정되어선 안 될 것이다.
소아조로증을 앓는 열두 살 어린왕자 이야기
소아조로증을 앓는 대한민국의 단 한 명뿐인 아이 원기. 남들보다 7배 빠른 시간을 사는 원기에게는 길어야 5~7년의 시간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원기는 꿈을 꾼다.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사랑의 대화가 담긴 이 책을 통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순간의 행복을 즐기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원기 아빠인 저자가 원기와 그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고통의 기록이자 위로의 이야기다. 춘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원기의 병명을 알게 되었던 때부터 원기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시간들, 그리고 조로증재단이 개발한 임상약에 희망을 걸고 보스턴까지 건너갔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순간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삶의 가혹했던 기억들을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절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담아냈다.
들어가는 말
첫 번째 이야기_너무나 다르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원기
똥 묻은 팬티/한밤중/아빠의 마음
두 번째 이야기_원기가 눈으로 말하다
산타클로스를 믿는 믿음/종이비행기/넘.사.벽. 120센티미터
세 번째 이야기_원기의 돌잔치
욘니의 노래/등 긁기/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겪는 문제들
네 번째 이야기_원기와의 1박 2일
아버지의 눈물/원기에게 듣고 싶은 말/아빠, 어디야? 아빠, 언제와?
다섯 번째 이야기_4년이라는 기다림
사랑하는 아내/이빨요정/휴지 한 조각
여섯 번째 이야기_미구엘과의 짧은 만남
원기의 꿈/잠든 모습/원기의 그녀
일곱 번째 이야기_기다리던 검사
원기와 치과/원기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은/원기와 수영
여덟 번째 이야기_사랑하는 딸 수혜
원기의 웃음소리/장례식장에서/새끼손가락
아홉 번째 이야기_원기와 모자
어느 할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삶의 중요한 순간들
열 번째 이야기_또다른 선물
조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원기가 잠들 때/원기는 참 말을 듣지 않는다
열한 번째 이야기_다시 일어서기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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