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엄마한테 뭐 사달라는 말 하지마!!"부쩍 "사달라"는 말이 입에 붙은 아들 녀석에게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시간부터 필요한 학용품을 제외한 물건은 구입 금지. 사달라고 아무리 떼써도 절대 들어줄 수 없으니 조를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 왜요? 왜 안되요? 갖고 싶은데...""갖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어. 그게 정말 너에게 필요한 것인지 잘 생각해 봐.""어~~~엄~~마, 제발요. 사 주세요. 네?""글쎄, 한 번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줄 알아야지. 계속 떼 쓸거야?""어~~~엄~~마~~~~~~!!""안돼~! 더 이상 보채면 혼날줄 알아라."결국은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런 대화는 늘 끝이 뻔하다. 아이의 성화에 항복해버리거나, 부모의 권위로 일방적으로 제압해버리거나. 결국은 끝까지 버티는 쪽이 승자가 되는 이 유치한 싸움이 부모 자식간에 빈번하게 발생한다. 넘쳐서 더 문제인 육아 아이들과 이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풍족하지 못했다. 그나마 밥은 거르지 않고 살 만한 딱 그 정도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호사였다. 장난감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 받는 대단히 특별한 선물이어서, 몇 개 안되는 인형이 너무나 소중했고 친구처럼 오랫동안 곁에 두었었다. 굳이 장난감이 많이 없어도, 그럴싸하게 지어진 놀이터가 없어도 아이들이 노는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니까 어떤 공간에서도 놀 줄 알았고, 빈터에서도 귀신같이 놀이감을 찾아냈다. 게다가 무척 재미가 있었다. 해가 저무는 줄 몰랐고 헤어짐이 아쉬울 정도로 맘껏 놀았다. 장난감이 없어도 놀이는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집 거실 한켠에는 대형 장난감 상자 네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자안에는 각종 장난감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장난감을 사 달라고 야단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히 부족함을 모르고 커 왔으니 아끼는 법도 잘 모른다. 아이들이 장난감들 속에서 뒤엉커 놀고 있는 너머로 TV에서는 방학기간 배를 곯는 아이들, 엄동설한에 난방도 안되는 방에서 힘겹게 겨울을 나는 아이들의 사연이 흘러나온다. 이 극단적인 풍경 앞에서 "내가 과연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고 있는걸까?" 자책감이 밀려든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사줄 때는 무척 신중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지 않다. 소비는 신중하게, 돈은 가치있고 어렵게 써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줄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삶으로 체득할 수 있었지만 요즘 세태는 그렇지 않으니까. "공생능력을 기르는데 게을렀다"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책 <어른 없는 사회>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소비자 마인드와 시장 원리를 깊숙이 내면화 한 탓에 최소한의 학습 노력, 노동 노력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경쟁을 위해서는 주위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그대로 자라 나이를 먹고 늙어서 노인이 될 것입니다. 그 때 일본은 정말 어른이 없는 나라 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안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47쪽)경쟁적인 소비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증명하는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자라도 덜 자란 어른이 될 것이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정책을 만들고 국가를 경영하며 경제를 움직이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세상은 불행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돈을 숭배해서도 안되고, 돈에게 삶을 지배할 절대권력을 주어서도 안된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저자는 "일본인은 타인과 공생하는 능력을 기르는 노력을 게을리했다"고(49쪽) 개탄한다. 그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없거나 다른 사람과 물건을 공유할 수 없는, 뭐든지 전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은 상당한 재력이 없는 한 보통 수준의 생활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면 다른 사람과 편하게 공생할 수 있는, 서로 집이든 물건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다지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꽤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아라고(121쪽) 본다. 소비능력이 아니라 공존공생의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생활 수준의 차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미래 교육의 화두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능력은 경쟁관계보다는 협력관계 속에서 더 크게 발현되고 발전하는 법이다. 관계하고 소통하는 능력, 연대하고 협동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과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무한 경쟁 사회속에서 남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방법과 남을 밟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은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고 결국 공동체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 살기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함께 사는 기술을 말하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의 등장’은 고도성장기를 거친 모든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민소득은 높아졌지만 삶의 리스크도 덩달아 높아졌다.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절감하게 되는 현실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저마다 독립적인 소비자가 되기를 부추기는 이 시대, 혼밥, 혼술이 유행하는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역설하는 우치다의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비칠지도 모르지만, 각자도생 시대에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생의 기술이야말로 생존의 기술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생태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생명력을 북돋는 방법을 평생에 걸쳐 몸으로 수련한 무도인으로서 ‘신체성’에 근거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합기도를 수련하며 몸으로 터득한 관계성과 레비나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십 년 동안 공부한 ‘관계의 철학’이 일맥상통함을, 십여 년 넘게 혼자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체험적으로 깨달았다고 말한다. 우치다의 사상은 삶과 신체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이처럼 무성한 가지를 뻗는 것이 아닐까. 지난 20여 년 동안 저자는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는데, 모든 책의 바탕에는 일관된 철학이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모든 저서들은 결국 ‘레비나스 철학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머리말
_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줍는 일
한국어판 서문
_ ‘조용한 상식인’들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1장.
소비사회와 가족의 해체
넌 경차로 충분해!
비용 대비 효과를 견주는 아이들
‘아이 같은 어른들’이 늘고 있다
강자에게는 지원할 의무가,
약자에게는 지원받을 권리가
어른이 없는 사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2장.
아버지의 몰락과 압도하는 어머니의 등장
부모 자식 관계가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소년 범죄가 늘고 있다’는 거짓말
묵시록적 공포, 핵전쟁
부모 자식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소원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드라마 소재가 못 된다
가족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아버지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진 어머니’의 탄생
‘어머니에 의한 지배’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약함’을 전제로 하는 육아 전략
어머니가 아버지 역할을 겸함으로써
생겨나는 어려움
3장. 확대가족론
‘엄마 일’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가족 내 서열 두 번째’를 선택한다
‘편의점 점원’이 되어 가는 교사들
서열이 사라진 아이들 사이에서 더 심해지는 왕따
누군가를 상처 입힐 때의 전능감
가상 세계와 현실이 뒤바뀌면
무술을 필수교과로 하는 것의 어리석음
놀이는 신체와 상상력의 공동 작업
연대의 능력이 삶의 능력
돈도 힘도 없는 약자들의 공동체
풍요와 가난의 양면성
4장. 격차사회의 실상
격차사회와 계급사회는 다르다
유아는 ‘과거의 나’, 노인은 ‘미래의 나’
아이가 수입으로 어른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
돈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요청되는 ‘분수에 넘치는 생활’
이 물은 내 거야, 너는 마시지 마!
‘공정한 경쟁’이라는 함정
5장. 학교교육의 한계
애국심 교육이 어리석은 까닭
사익 추구와 공교육의 몰락
학교교육에 희망을 걸었던 시대
자본주의는 빈부 격차의 확대를 원한다
이 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과격한 주장
6장. 불통을 넘어서는 소통 능력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일부러 하기
매뉴얼화가 삶의 힘을 빼앗는다
상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데까지
가까이 다가가기
7장. 다음 세대와 연결하기
사제지간은 대등한 인간 관계가 아니다
‘노력과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 관계
진정한 능력은 지나고 봐야 알 수 있다
상거래와 다름없는 오늘날의 부모 자식 관계
약자의 어려움을 낳는 가족의 해체
다음 세대와 연결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8장. 안테나 감도를 높이기
경쟁을 부추기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
페미니즘과 자본주의는 궁합이 좋다
사제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
‘운이 따르는 선배’를 찾는 여성들
‘운이 좋은 사람’ 따라가기
‘양질의 정보’가 흐르는 통로
정보를 감정할 수 있는 능력
9장. 자아 찾기의 함정
이전 세대에서 횃불을 이어받기
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SNS로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연장자들이 악덕기업처럼 굴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결정’을 하지 않는다
‘자아 찾기’라는 자멸적인 이데올로기
저학력, 반지성, 이기적인 젊은이들
클레이머의 증가는 하층 계급화의 상징
10장. 제자라는 삶의 방식
스승을 찾는 여행
제자의 일방통행이어도 좋다
‘나는 모른다’는 해방감
스승을 욕망하는 법을 배우기
배움의 스위치가 켜지면 멈추는 일은 없다
‘이 사람을 따라가도 괜찮겠다’
스승을 발견하면 절반은 성공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보면
펴낸이의 말 _ 종적 연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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